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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기고, 논평, 성명

(기고)할머지 꼭 기억할게요

꿈도 웃음도 많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웃음이 많던 17세 소녀가 꿈꾸는 20살은

그저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알콩달콩 살아가는 

생각만 해도 벅찬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런 소녀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어둠의 손길

그 손길은 소녀의 꿈을 짓밟았고 웃음을 앗아갔습니다. 

소녀는 그렇게 채 피어보기도 전에 모든 걸 빼앗겼습니다.

지금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941년, 하얗고 앳된 얼굴의 소녀와 

세 명의 친구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일본인에게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끌려갑니다.

보내달라고 애원하며 울고 또 울었지만,

어디로 달려가는지 모를 트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 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4년 간의 비극이 그녀의 모든 삶을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4년을 보낸 소녀는

1945년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해방되던 그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소녀의 나이는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돌아왔지만,

그녀는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무너뜨린 일본인들의 만행에

그녀가 꿈꾸던 장밋빛 삶은 핏빛으로 채워졌고,

17살 이후로 행복함에 크게 웃어본 일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부산, 마산, 서울 등에서

식당 일과 파출부 일을 하며 마지 못해 살아왔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17살이었던 소녀는 91세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지난 2015년 5월 27일, 한 많은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웃음 많던 소녀의 작고 소박했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꿈으로 남긴 채 눈을 감은 그녀.

그녀의 이름은 '이효순'...


그렇게 일본인에게 꿈을 짓밟히고, 웃음을 빼앗긴 

그 소녀들이 이젠 쉰 다섯(52) 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의 소원은 단 하나. 

원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한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


천벌은 아닐지언정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떠난

故 이효순 할머님과 먼저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따뜻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