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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기고, 논평, 성명

(컬럼)어느 멋진 노기자의 초라한 축음

  충남 아산을 대표하는 일간지에 몇십년간 기자로 재직하던 한 노기자가 암 투병 끝에 결국 지난 6일, 향년 64세로 눈을 감았다. 이날은 고인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우연이라고 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섭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납덩이가 내려앉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순간, 여유롭고 편안하게 세상을 하직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플랫홈에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존경스럽기 까지 했다. 

 

  말기암 판정을 받고도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통증과 죽움의 공포와 싸우며 세상 떠나기 10일전까지도 카메라를 메고 취재현장을 뛰어 다니던 그는 동료들에게 평생 잊지못할 흔적을 남겼다.

 

  회생 불가능한 생명을 억지로 유지하려는 꼴 사나운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순순히 운명을 맞이하며 시신을 기증한 숭고한 그의 뜻에 우리는 또다시 머리 숙여진다. 지인들이 치료비에 보태 쓰라는 돈을 오히려 아려운 이웃에 써달라며 기부하고, 공·사를 막론하고 지역의 기관단체장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정열은 남달랐으며, 취재차량도 마다하고 버스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취재하던 우직하고 곧은 기자였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엔 찾아오는 이 많지 않고 쓸쓸해도 왠지 그가 훌륭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픈 몸으로 병석에 누워서도 본인이 다니던 신문사에서 발간된 신문을 빠짐없이 읽어보며 동료들에게 격려와 지적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하지만 숭고한 죽음 앞에 마지막 떠나는 날은 너무도 초라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을 관내 한 대학에 기증해 대학관계자가 고인을 인도하러 왔으나, 시신운구용 영업용 화물승합차에 아무런 장례절차도 없이 묵념만 하


고 고인을 싣고 도망이라도 가듯 꽁지가 빠지게 사라지는 모습에 유족들과 지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에 시신 기증자가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시신기증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고인은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놓고 더이상 아프지 않은 영면의 길을 떠났다. 다시 그를 볼수는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 볼 것이다. 수많은 언론과 인테넸 매채를 통해 매일 수백 수천 건의 정보와 사건·사고가 독자들에게 전해질때 이는 기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랄뿐이고, 이렇게 정열을 바친 멋진 노기자의 죽음 앞에 우리는 잠시라도 애도를 보내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