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경찰서 수사과장 경정 이형근
우리나라의 조서제도는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시에 도입되어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 2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몇몇 개혁의제를 발표했다. 그런데 조서제도는 '증거법 차원의 문제'이지 '검찰개혁과는 무관하다'는 이유로 개혁의제에서 빠졌다.
반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형사소송법 개정법률안 여섯 건(금태섭, 오신환, 박범계, 이동섭, 표창원, 김석기 대표발의)은 공히 현행 조서제도를 개혁대상에에 포함시켰다. 같은 시대에 같은 이슈를 논의함에 있어 법무·검찰개혁위원들과 국회의원들 간에는 왜 이와 같이 극명한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조서제도는 수사과정에서 수사대상자의 진술을 문답식 조서에 기록한 후 재판과정에서 그 조서를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판단의 증거로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문답식 조서를 작성하고, '그리고' 그 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나라 조서제도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만 말이다. 반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증거로 쓸 수 있다.
비교법적으로 수사대상자의 진술을 기록하는 방식은 크게 조서나 보고서 등의 서면에 기록하는 방식, 녹음물이나 영상물 등의 매체에 기록하는 방식, 양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다음으로 이와 같이 생산된 진술기록을 활용하는 방식은 피고인의 혐의유무를 판단할 직접 증거로 삼는 방식과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다툴 간접 증거로 삼는 방식으로 나뉜다.
그런데 영상물이 없는 상태에서 수사대상자의 진술을 기록한 조서를 직접 증거로 인정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문답식 조서가 아니라 진술서 형태의 공술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찰조서와 검사조서에 대한 차별도 없다.
진술을 서면에 기록하게 되면 각종 오류가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다양한 종류의 왜곡이 존재했다.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직접 분석한 연구는 없지만 국내외의 관련 연구에 의하면, 검사가 작성한 조서도 경찰의 조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칭 '309동 성폭행 사건(경찰조서의 왜곡)'이나 '오산시장 뇌물수수 사건(검사조서의 왜곡)'은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다. 이와 같은 왜곡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재판과정에서 '아니요.' 한 마디면 무력화되기 때문에 사후 차단은 가능하다.
반면,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재판과정에서 '아니요.'라고 말해도 쉽게 무력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치명적이다.
Leo와 Davis는 형사절차에 관여하는 어느 누구도 터널시야와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터널시야는 '특정한 대상에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다른 대상은 배제하는 경향'을 말하고,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증거를 탐색, 생산,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마인드 버그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조서제도는 이와 같은 마인드 버그에 매우 취약하다.
문답식 조서는 물은 것과 답한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서를 보는 사람의 의사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실상 문답과 문답 사이사이에는 신문자의 터널시야와 확증편향에 의해 제거된 수많은 문답과 정보과 숨겨져 있다. 이는 개인의 역량과 자질을 향상시킨다고 해서 근원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될 즈음 국회 법사위 엄상섭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찰관이나 검찰관이 만든 조서에 대하여 증거능력을 주지 말아야 한다. 피고인이나 변호인 측에서 이의가 없는 한에서만 유죄의 증빙재료로 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야 될 것이지만 우선 경찰관의 조서만 그렇게 하고 검찰관의 조서는 증거능력을 주기로 ‘절충’하여 규정했다.” 64년 전부터 우리 입법자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형사소송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과 뜻을 같이 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여 이를 후대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따라서 여섯 건의 개정법률안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고,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개혁의제에서 조서제도가 빠진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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