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준표
전자제품을 사면 메뉴얼 그러니까 사용설명서가 있고, 음식 만드는 데에도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순서가 친절하게도 빼곡히 적혀있다. 그런데 ‘학생사용설명서’라니 뜬금 없다. 아이들은 밥만 주면 어련히 알아서 잘 자라는데 말이다. 그런데 집안에 고양이, 강아지, 소, 닭, 돼지 등 가축들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자란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단연코 내 교직경력 40여년을 걸고 얘기하건데, 우리 아이를 잘 키우려면 일련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그냥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키우는 대로 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더이상 과거의 양육의 개념은 아니다.
갓난 아기는 이유없이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언어이며 욕구의 표출이란다. 우리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행동의 일탈은 그것이 다양한 언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왕짜증!'무엇이든 부정하고, 발로차고, 외치고, 혼자이고 싶은 행동들은 일탈이 아니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늘 아프다고 한다. 아니 고프다. 에너지가 넘쳐 무엇이든 호기심과 열정이 하늘을 치솟는다. 그래서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Maslow)는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들 다섯 가지 욕구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서 단계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욕구부터 시작해 자아실현 욕구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needs)를 맨 먼저 채우려 하며, 이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면 안전해지려는 욕구(safetyneeds)를,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면 사랑과 소속 욕구(love&belonging)를, 그리고 더 나아가 존경 욕구(esteem)와 마지막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를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욕구가 단계적인지는 모르지만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이 늘 존재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에 부족한 영양분을 요구하듯이 말이다. 이에 대한 지도와 관찰, 안내는 우리의 책임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의미는 아이의 욕구를 채우려는 노력과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역량중심의 아이로 키운다는 의미다. 즉 성장을 돕고 성숙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이 시대는 너무 다양하고 급변해서 지식의 주기가 짧으며 그 지식조차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니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내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지식과 정보가 다 나에게 의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선택해서 쓰는 시대가 되었다. 즉 수많은 지식을 찾아서 나에게 맞게 어떻게 가공하여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지식의 관점이 변함에 따라 교육의 방법도 내용도 변했다. 이미 산업화 시대가 아니고 지금의 직업도 언제까지 존재할지 예측할 수 없다면 학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가 숙제다.
최근 ‘학교무용론’이 있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홈스쿨링’도 대두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회의로 또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하는 입장에서는 그 동안 지식교육이 의미없게 되니 학교의 할 일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 아이들은 저절로 성장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학생을 키우는데 교사로서의 변인 즉 사람이 사람으로 크는데 학교변인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TV가 있고 각종 매체가 있어서 아니 클릭만 하면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데 굳이 학교까지 가서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있다. 집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지식이 넘쳐나니 이해도 된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라면 공감할 부분이다. 그래서 학교가 변하고 있다. 지금 교육은 우리 아이들은 지식을 암기하기보다는 역량을 학습하고 있다. 즉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은 미래 역량이다.
미래 역량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 아이들은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학생의 성장발달단계에 따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성취도 또는 성취기준을 정해서 배워야 한다. 흔히 어른들은 책가방을 들고 나서면 의례히 ‘학교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와라’했을 때 교과지식을 말했다. 즉 이때의 의미처럼 적어도 교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 나가는 그리고 지식을 확장하는데 매우 의미있고 필요하다.
둘째로 인성적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 과거에는 엄마품이 있는 가정에서 밥상머리교육을 충실히 받아 체득했었다. 아프리카 속담에도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모두가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어른들은 머리를 쓰다듬고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사랑스런 손길로 보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우리 사회는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혼자 놀기를 즐겨한다. 유일한 친구가 그래도 스마트한 기계(?)라 하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제 이들에게 정의, 사랑, 나눔, 배려 등 삶의 가치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이들은 굳이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지던 도덕과 규율 등에 의해서 가슴에 습득되는 가치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도 사회에도 타인에게 배려할 스승이 사라진지 오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도덕성 회복을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 이런 가치까지 법이 강제하고 우리를 구속한다면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있다. 그러니 가장 시급한 것이 삶의 가치관 교육일 듯하다. 아마도 갈수록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가진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셋째로 공동체 의식을 키워야한다. 최근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품을 떠나 외톨이가 되고 있다. 보모품에서, 인큐베이터에서 남의 젖병을 빨며 자라고, 3세만 되면 정부에서 파견한 육아전문가(돌봄)가 돌봐주니 좋을 법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은 키가 더 크기도 전에 엄마의 바람대로 학원을 전전하다 보면 나 혼자 외톨이다. 친구가 없다. 어른으로 보면 사회망이 없어 협동하고 상호 의지할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 자신 앞에 놓인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즉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아이들은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친구, 끈끈한 친구를 사귀는데 실패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는 그리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세상에 내 얘기를 내가 시키는 대로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친구(?)는 스마트폰이다. 그러니 요새 학생들은 둘이 모여도, 다섯이 모여도 각자가 제 절친인(?) 스마트폰만 다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사회망을 가꾸어 공동체가 협력하여 어려운 일, 즐거운 일 서로 나누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잘도 놀고 있다. 동아리활동은 공동의 사고, 공동의 활동을 통하여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지는 법과 이기는 법을 습득함으로써 민주적 소양뿐만 아니라 사고를 다양하게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넷째로 꿈을 가꾸도록 해야 한다. 꿈은 미래다. 지금이 충실하고 진지하려면 미래에 대한 목표가 담보되어야 한다. 꿈은 지금 학업에 열중하는 이유와 필요의 근거가 되며, 힘을 쏟아야 할 방향과 이유가 된다. 그렇게 되기를 학교와 가정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진로 진학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가정에서는 격려하고 우리 자녀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귀 기울여 같은 방향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여 가치있는 길을 가도록 지도할 의무가 있다. 그냥 가는 대로 바라봐서는 부모가 아니다. 어떻든 선택은 학생들이 하지만 온갖 메뉴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학교는 학생들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돕고 있으며, 학습의 방법을 배움중심과 자기주도적으로 탐구하도록 바꾸고 있다. 특히 중학교에서는 금년부터 한 학기만이라도 자신에게 천착하도록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장황하지만 학교의 변화만으로 우리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 모두가 나서야 한다. 인식하지만 해법은 가정, 사회, 학교가 같이 인식하고 학생교육은 국민교육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며칠 전에 나는 어느 교회에서 '전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는 문구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전도'라는 단어를 '교육'으로 바꾸고 다시 음미했다. 그래! 교육은 방법과 내용이 아니라 실천이구나.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은 생명체를 다루듯이, 변화에 대응하는 능동적인 유기체를 다루듯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렇게나 순서없이가 아니라 사용설명서에 적힌 대로 말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다.
나를 제대로 키워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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